일단 상담부터 받아보라는 말에 휘둘렸다
지인들 결혼 소식이 하나둘씩 들려오니까 은근히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주변에서 결혼정보회사 가입해서 만났다는 이야기를 툭툭 던지니까 저도 모르게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그런 곳에 큰돈을 쓴다는 게 좀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뭐랄까, 사람을 인위적으로 만난다는 게 좀 삭막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다들 ‘그냥 상담만 받아봐, 가입 안 해도 그만이야’라고 하니까 그 말에 설득당해서 강남역 근처에 있는 사무실을 예약했어요. 상담실은 생각보다 훨씬 깔끔하고 조용했는데, 상담해주시는 분이 제 나이랑 연봉, 직업 이런 걸 물어보시는데 뭔가 면접 보는 기분이 들어서 살짝 불쾌하면서도 은근히 긴장되더라고요.
400만 원이라는 숫자의 무게감
상담 끝에 제가 들은 금액은 가입비만 대략 400만 원 정도였어요. 횟수 제한이 있는 상품이었는데, 이게 비싼 건지 싼 건지 감도 안 오더라고요. 당장 결제하라고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당일 가입하면 뭐를 더 해준다는 식으로 살짝 압박을 주니까 그냥 얼떨결음에 계약서에 서명을 해버렸네요.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통장을 확인하는데 400만 원이 빠져나간 게 갑자기 실감이 나는 거예요. 사실 결혼정보회사 말고도 요즘은 소개팅 앱이나 동호회 같은 선택지도 많은데, 제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어요. 집에 와서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기로 했는데, 괜히 죄송한 마음도 들고 복잡하더라고요.
데이터 기반의 매칭이라는 환상
첫 번째 매칭 상대를 만나는 데까지는 한 3주 정도 걸린 것 같아요. 프로필을 미리 주고받고 만나는 거라 서로 어느 정도 신원은 확실한데, 막상 마주 앉으니까 대화가 정말 건조하더라고요. 상대방도 저처럼 가입비를 냈을 텐데, 서로가 서로를 검증하려는 눈빛으로 앉아있으니까 긴장이 풀릴 리가 없죠. 예전에 친구 소개로 나갔던 소개팅은 그래도 공통 관심사로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졌는데, 여기서는 ‘결혼하면 어디에 살 생각인가요?’, ‘자산 규모는 어느 정도 생각하세요?’ 같은 질문들이 오가니까 정말 무슨 비즈니스 미팅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런 만남을 5번 정도 더 해야 한다는 게 벌써부터 피로하게 느껴졌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좁았던 선택의 폭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생각보다 매칭 폭이 좁다는 점이었어요. 저는 그래도 제가 원하는 조건들을 최대한 반영해주실 줄 알았는데, 막상 제안받은 분들은 제가 생각했던 범주와는 조금 거리가 있더라고요. 담당 커플매니저분께 말씀드리면 ‘이 정도 조건이면 충분히 경쟁력 있다’라고 하시는데, 사실 제가 느끼기에는 제 기준을 낮추라는 말처럼 들려서 마음이 좀 불편했어요. 가입하기 전에는 뭐든 다 해줄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막상 돈 내고 나니까 제 요구사항이 너무 구체적이라서 매칭이 어렵다는 식으로 돌아오니까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믿음은 진작에 버렸지만, 돈을 줘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게 조금 허탈하달까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다가도
가끔은 앱으로 가볍게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는데, 그건 또 그거대로 무서워서 못 하겠고, 그렇다고 결혼정보회사에 올인하자니 여기서 만나는 분들이 다 너무 사무적으로만 느껴져서 고민이에요. 어제도 매니저님한테 연락 와서 새로운 분 프로필 하나 받아봤는데, 사진만 보고 바로 거절하기엔 너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고민하다가 일단은 만나보기로 했어요. 결혼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서 숙제하듯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딱히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장 탈퇴하기엔 낸 돈이 너무 아깝고. 그냥 되는대로 흘러가는 중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