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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복판에서 상담받고 나왔는데 기분이 묘했다

호기심에 찾아간 압구정의 그 건물

지나가다 보면 늘 보는 그런 빌딩들이 있다. 겉으로는 너무 조용해서 여기가 뭐 하는 곳인가 싶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들. 얼마 전에 친구가 하도 성화여서 등 떠밀리듯 압구정에 있는 결혼정보회사에 다녀왔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곳은 아니었지만, 이 바닥에서는 나름 꽤 유명하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었다. 상담 예약 시간까지 10분 정도 남아서 1층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그게 한 7천 원이었나. 물가가 정말 미친 것 같다. 상담비는 없었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이 오히려 더 비싸게 느껴졌다.

재벌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상담실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아늑했다. 매니저님이라고 불리는 분이 차를 내주면서 내 서류를 훑어보는데, 왠지 모르게 벌거벗은 기분이었다. 학벌, 직장, 부모님 재산 상태까지, 내 인생을 숫자와 스펙으로 일렬로 세우는 기분. 갑자기 드라마 속 재벌가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다. 자기네 회원 중에는 실제로 대기업 임원이나 재벌가 방계 정도 되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식의 뉘앙스였다. 물론 그들이 나랑 만날 일은 없겠지만, 마치 다른 세상의 규칙을 엿듣는 기분이랄까. 연예인들이 재벌 캐릭터를 연기할 때 고민하는 지점이 이런 것일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보니 그들의 세계도 결국 조건 맞추기 게임 같아서 참 씁쓸했다.

시스템이 정교할수록 더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

매니저님이 보여준 시스템은 꽤나 정교했다. 컴퓨터 화면에 내 등급 비슷한 것이 표시되는 것 같았는데, 괜히 기분이 나빠서 딴청을 피웠다. 가입비가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 단위까지 오가는데, 이게 사람을 만나는 비용이라기보다는 어떤 거래소의 수수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만나도 이 금액을 본전 뽑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것 같아 무서웠다. 해외 거주하는 사람이나 전문직들과의 매칭 이야기를 쏟아내시는데, 그 정보가 정말 검증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홍보인지 분간이 안 갔다. 사실 그분도 내 인생의 반쪽을 찾아주려는 게 아니라, 이 회사의 매출 목표를 채우려는 느낌이 더 강했으니까.

연애가 아닌 비즈니스를 상담받는 기분

상담 내내 내가 원했던 건 ‘어떤 사람이 좋은 인연일까’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어떤 조건이 시장에서 먹힐까’였다. 재벌가 이야기를 하며 그들이 사람을 고르는 기준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그런데 나는 그 기준에서 어디쯤 위치하는지를 은연중에 깨닫게 만드는 화법. 참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굳이 이런 곳까지 와서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어쩌면 내가 너무 사람을 낭만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래도 사람을 돈 주고 등급 매겨서 골라야 하나 싶어서, 결국 가입 서류에는 도장을 찍지 않고 나왔다.

밖으로 나왔을 때의 어색한 공기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해가 져 있었다. 강남의 화려한 조명들이 켜지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데, 아까 상담실에서 들었던 비현실적인 숫자들과 조건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결혼이 뭐라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러 여기까지 왔나 싶은 자괴감 반, 그래도 조금은 궁금했던 호기심 반이 섞여서 마음이 묘했다. 아마 다시는 가지 않겠지만, 그 매니저님이 말한 ‘결혼 시장의 현실’이라는 게 뇌리에 박혀서 한동안은 사람을 볼 때마다 학벌이나 배경부터 보게 될 것 같아 그게 제일 싫다. 연애 상담을 받으러 간 건데,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법을 잃어버리고 온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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