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예약부터가 묘하게 긴장되던 순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니면 주변에서 다들 하나둘 짝을 찾아 떠나니까 나만 정체된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2026년 7월의 어느 덥고 습한 날이었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이름 좀 들어본 결혼정보회사를 예약했다. 홈페이지 사진만 보면 무슨 영화 세트장처럼 화려하고 다들 우아하게 차 마시며 상담받는 모습이라 좀 쫄기도 했다. 상담 비용은 없었지만, 막상 건물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심장이 너무 뛰어서 손에 땀이 났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여기 가면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근거 없는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조용하고 사무적인 분위기여서 조금 당황했다. 따뜻한 조명 아래서 차분한 말투의 매니저님이 나를 맞이했는데, 그 친절함이 오히려 더 사무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연봉과 학벌이 대화의 중심이 되는 기분
상담 테이블에 앉자마자 대뜸 태블릿을 내밀며 내 프로필 정보를 적으라고 했다. 이름, 나이, 사는 지역은 그렇다 치고 직장 규모나 연봉, 최종 학력 같은 걸 구체적으로 적어야 했다. 칸을 채우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들이 겨우 이 몇 가지 수치로 환산되어 평가받는 느낌이랄까. 매니저님은 내 조건을 훑어보더니 생각보다 담담하게 가입비 이야기를 꺼냈다. 대략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의 등급별 가입비를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돈이면 차라리 여행을 몇 번 더 가거나, 아니면 정말로 배우고 싶었던 외국어를 수강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물론 결혼은 인생의 큰일이니까 투자가 필요하다는 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내 마음이 그 금액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조언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밖은 벌써 어둑해져 있었다.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야, 요즘 누가 거기 가냐, 차라리 동호회를 나가라”며 핀잔을 줬다. 사실 나도 안다. 주변에서도 소개팅 앱이다 뭐다 해서 만나는 사람도 많고, AI 챗봇이랑 대화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사람도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가상 애인에게 의존하다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기사가 며칠 전에도 있었는데, 어쩌면 나도 그만큼 현실 연애가 귀찮고 무서워졌던 건 아닐까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누군가와 깊이 알아가고, 서로의 사소한 습관까지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지금의 나에겐 너무 큰 에너지 소모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돈으로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혼자 해결하려니 더 막막해지는 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봤다. 오늘 상담받은 매니저님이 마지막에 ‘좋은 인연은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는 식의 말을 했는데, 그게 참 공허하게 들렸다. 정말 그 돈을 내고 가입하면 없던 인연이 생기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내 불안함을 잠시 돈으로 잠재우는 걸까. 며칠 전 오늘의 운세를 봤을 때 ‘이성 간의 언행을 주의하라’거나 ‘귀인의 도움을 받아보라’는 식의 뻔한 말들이 맴돌았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는지, 가끔은 내가 뭔가 중요한 단계를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가도, 또 막상 아무나 만나고 싶지는 않은 그 마음이 참 모순적이다. 결국 가입 서류는 가방 구석에 쑤셔 넣은 채 그대로 책상 위에 방치해두고 있다. 지금은 딱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흐르는 일상
결국 난 아무런 계약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을 찾은 것도 아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평소처럼 업무에 치이고, 저녁에는 유튜브를 보다가 잠드는 날들이 반복된다. 결혼정보회사 상담을 받은 게 무슨 대단한 결심이었던 것처럼 굴었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나를 조금 더 몰아세운 정도였던 것 같다. 가끔은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다가도, 어떤 날은 혼자 사는 게 이렇게 편한데 왜 굳이 누군가를 들이려 할까 싶기도 하고.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그냥 당분간은 이런 고민을 잠시 접어두고, 주말에는 예전에 가보고 싶었던 전시회나 다녀올까 생각 중이다.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한 건 알겠지만, 지금 당장은 나 자신조차 잘 다독이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라서.

챗봇이랑 대화하는 게 그렇게 싫지는 않은데, 깊게 알아가는 거 자체가 에너지 소모되는 느낌이라 그런가요.
직장 규모와 연봉을 상세히 적는 과정에서, 마치 상품처럼 평가받는 느낌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