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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만 받으러 갔다가 진만 다 빠지고 온 날

일단 상담실 문턱부터가 너무 높았다

결혼 날짜가 잡히고 나니 주변에서 하나둘 결혼정보회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게 굳이 필요한가 싶었다. 요즘은 어플로도 많이들 만나고, 주변 소개도 적지 않으니까. 그런데 막상 준비를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게 하나도 없더라. 특히 결혼 비용 문제랑 신혼집 위치 같은 현실적인 고민들이 툭툭 튀어나오니까 마음이 급해졌다. 왠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이 복잡한 과정이 조금은 체계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기대를 품고 강남에 있는 한 결혼정보업체를 찾아갔다. 예약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는데, 상담실로 안내받기 전까지 로비에서 기다리는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이미 상담을 받고 나오는 사람들 표정을 훔쳐보게 되고,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하는 불안함이 섞여서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쏟아지는 조건들 사이에서 느낀 피로감

막상 상담이 시작되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카운슬러 분은 정말 프로페셔널했다. 나이가 몇인지, 연봉은 어느 정도인지, 부모님 직업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서 학벌까지 아주 세세하게 물어보시더라. 머리로는 알고 갔던 내용들이지만, 막상 얼굴을 맞대고 내 가치를 숫자로 환산당하는 느낌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게 내 인격을 평가받는 자리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내가 가장 신경 쓰였던 건 ‘가입비’였다. 어떤 서비스는 가입비만 수백만 원을 호가하고, 성혼 사례비는 별도라고 하더라. 서울에서 2억짜리 전세 살면서 모은 돈 5억으로 신혼집 구하려고 낑낑대고 있는데, 업체에 낼 돈부터가 이미 내 예산을 크게 흔드는 수준이었다. 내집스캔 같은 서비스로 집주인 이력이나 조회하며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애쓰는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세상 같았다.

상담은 상담일 뿐인데 왜 이렇게 지칠까

상담이 끝날 무렵, 담당자는 오늘 당장 계약하면 특별 할인을 해주겠다며 서류를 내밀었다.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나왔는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평범한 커플들을 보는데, 다들 저렇게 복잡한 검증 과정을 거쳐서 만나는 걸까 싶더라. 하하와 별처럼 SNS에 커플룩 사진 올리고 웃고 떠드는 일상과는 거리가 먼, 철저히 효율성과 조건 위주의 세계에 한 발 담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원했던 건 그런 스펙 위주의 매칭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요즘 뉴스에서 본 웨딩 가격 공개 의무화 같은 정책들이 왜 나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업체마다 정보가 너무 폐쇄적이고 가격도 부르는 게 값인 것 같아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 가늠조차 안 되더라.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돌아온 밤

결국 그날 상담 이후로 추가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가 계약을 안 했으니까 당연한 결과겠지만, 왠지 내가 기준 미달이라서 연락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열등감까지 들었다. 결혼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유난을 떠는 건지 잘 모르겠다. 주변 친구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만나서 결혼하곤 하는데, 나만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내일은 다시 부동산 사이트나 뒤지면서 현실적인 신혼집이나 알아봐야겠다. 결혼정보업체라는 곳이 나에게 줄 수 있는 확신보다는, 스스로가 가진 불안감이 더 컸던 상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딱히 결론도 안 나고 비용만 시간만 낭비한 것 같은 찝찝함이 여전히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뭐, 일단 내년 결혼 준비는 계속해야 하니까. 다음엔 어디를 더 알아봐야 할지조차 엄두가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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