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어딘가에서 받았던 서늘한 평가
지나가다 보면 강남역 근처에 결혼정보회사 간판이 참 많다. 나도 나이가 차니 주변에서 한 번 가보라는 성화에 못 이겨 지난달쯤이었나, 듀오 본사 근처를 서성이다가 그냥 상담 예약을 잡았다. 사실 별 기대는 없었다. 그냥 요즘 결혼이라는 게 시장에서 물건 고르듯 돌아간다는데, 정말 그럴까 싶은 호기심이 더 컸던 것 같다. 상담실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들어가자마자 들은 건 내 학벌, 직장, 그리고 부모님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꼬치꼬치한 질문들이었다. 마치 대출 심사라도 받는 기분이랄까. 상담 매니저분은 굉장히 친절했는데, 그 친절함이 오히려 더 사무적으로 느껴져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40대에 가까워진 지금, 내 연봉과 자산 규모를 종이에 적어 내려가는 내 모습이 왠지 모르게 초라하게 느껴졌다.
6등급 굴욕이라는 말이 남의 일 같지 않고
방송에서 양상국이 6등급 판정받고 굴욕이라며 힘들어하는 걸 봤을 때만 해도 그냥 예능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내 등급이랄지, 매칭 가능한 풀이 어느 정도인지 듣고 나니 마음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가진 조건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시장 안에서는 ‘선택을 기다리는 쪽’과 ‘선택을 하는 쪽’이 너무 명확하게 갈리더라. 상담비로 꽤 큰 돈을 내거나, 가입비만 수백만 원씩 들어가는 구조를 들으니 결혼이 정말 비즈니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떤 회사는 200만 원에서 500만 원 정도를 부르기도 하던데, 그 돈을 내고서라도 정말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지노블 같은 곳도 바캉스 프로모션이니 뭐니 홍보를 많이 하던데, 왠지 그런 마케팅마저도 결혼이라는 절차를 더 가볍게 만드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솔직히 조건이 다인 것 같은 서글픔
상담 중에 매니저가 지방에 계신 우리 부모님 상황을 물으며 소규모 학원 운영이 나쁘지 않지만 상위 자산가 집안과 엮이기는 조금 어렵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돌려 말하는데, 그 순간 내가 이 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사랑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건가. 요즘은 소개팅 앱으로도 쉽게 만난다지만, 그런 건 또 가볍다고 기피하는 분위기 속에서 결혼정보회사는 어쩌면 가장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는 곳 같다. 2000년대생이 나온다는 예능을 보며 웃고 떠들다가도, 정작 현실의 나는 누군가의 점수표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995년부터 5만 명 넘게 결혼시켰다던 듀오의 통계 수치가 나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혼자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상담만 받고 가입은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탔는데, 퇴근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누가 나를 ‘상품’으로 점수 매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갑자기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결혼을 아예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이런 식의 등급 매기기를 거쳐야 한다는 게 너무 피로했다. 40대가 넘어가면 더 심해질 거라는 매니저의 은근한 협박성 멘트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지금 당장 무리해서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어쩌면 나는 결혼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내 조건이 아직 시장에서 가치가 있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주말 내내 집에서 뒹굴거리며 넷플릭스나 보고 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이게 나은 건지, 아니면 나중에 더 늦어서 후회할지는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그냥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 굳이 돈 써가며 내 가치를 매기고 싶지 않다.

부모님 상황을 고려해 보려니, 정말 복잡한 문제 같았어요.
부모님 상황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정말 공감했어요. 저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