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운세 한 줄에 휘둘려보기
며칠 전 아침에 습관처럼 스마트폰으로 그날의 운세를 확인했다. 84년생인 내 띠에 맞춰 나온 문장 하나가 유독 눈에 박혔다. ‘남쪽 방향으로 가면 인생을 함께할 평생의 배필을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쓱 넘겼을 텐데, 그날따라 회사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괜히 마음이 헛헛했는지 갑자기 그게 참 크게 다가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서른 중반이 넘은 성인이 운세 앱 하나 보고 주말 계획을 짜다니. 그래도 뭐랄까, 그날따라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비게이션에 남쪽 끝에 있는 대전역을 찍고 무작정 기차표를 끊었다. 왕복 비용으로 대략 4만 원 중반대가 들었는데, 사실 평소 주말 같았으면 집에서 넷플릭스나 보면서 뒹굴었을 돈이다.
대전역 광장에서 보낸 애매한 세 시간
막상 대전역에 도착하니 내가 왜 여기 와 있나 싶었다. 남쪽으로 가면 배필이 나타난다는 게 대체 무슨 근거일까. 역 광장에 서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사실 소개팅 어플에서 훈남 프로필 보면서 시간 날리는 것보다는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도 있었다. 대전역 근처는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꽤 많았는데, 다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혹시 저 사람들 중에 내 운명의 상대가 있을까 싶어 괜히 두리번거렸지만, 돌아오는 건 낯선 사람들의 무심한 눈빛뿐이었다. 한 3시간 정도 있었나.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발바닥은 아파오기 시작했다. 누구를 만날 기미는커녕 배고픔만 밀려왔다.
심리테스트와 현실 사이의 괴리
기차를 기다리며 지루함을 달래려고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연애 심리 테스트’를 몇 개 해봤다. ‘내가 무의식중에 원하는 배우자 유형’ 같은 건데, 결과는 항상 비슷했다. 생활력이 강하고 자산 관리에 능한 사람을 만날 팔자라고 한다.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사주 풀이 내용이랑 비슷해서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소개팅을 하면 그런 사람은커녕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찾기도 어렵다. 운세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했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매번 의심투성이인지 모르겠다. 중매나 결혼정보회사 가입을 고민해본 적도 있지만, 막상 돈 내고 사람을 만나러 나가는 그 과정 자체가 너무 인위적이라 자꾸 뒤로 미루게 된다.
운세를 믿는 마음과 조금은 씁쓸한 귀가길
오후 5시쯤, 결국 별다른 수확 없이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를 탔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내가 지금 뭘 한 건가 싶어 허탈했다. 어차피 운세는 통계적인 말장난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정말 그런 신비로운 힘이 내 삶을 구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나 보다. 뱀띠나 소띠가 대운이 터진다는 뉴스도 봤지만, 내 운세는 딱히 대단한 행운보다는 ‘심기일전하라’는 뻔한 말로 끝이 났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 때의 그 썰렁함이란. 분명 남쪽에서 배필을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내 배필은 서울에 있는 걸까 아니면 아예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는 한 걸까.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굳이 남쪽을 고집하지 않기로
다음 주 운세를 또 확인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번 경험을 통해 확실히 깨달은 건, 운세가 가리키는 방향이 내 인생의 진짜 방향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사실이다. 가끔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기도 한다. ‘그래, 해봤는데 안 되더라’라는 결론을 스스로 확인했으니까. 아마 다음 주말에는 운세 따위 보지 않고 그냥 동네 도서관이나 갈 것 같다. 괜히 남쪽 방향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마음 가는 곳으로 다니는 게 정신 건강에는 훨씬 이로운 것 같다. 그래도 만약에 정말로 그날 대전역에서 누군가와 눈이라도 마주쳤다면 내 생각이 바뀌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거다.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을까.

운세는 재미로 보는 거 맞을까요? 제가 봐도 결국 운명보다는 노력의 중요성이 더 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