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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받으러 갔다가 통장 잔고부터 확인하게 된 날

어쩌다 결혼정보회사 상담실 문을 열게 되었나

사실 결혼정보회사라는 곳을 내가 직접 찾아갈 줄은 몰랐다. 친구들 중에도 몇 명 다녀왔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왠지 드라마에서나 보는 일 같았달까. 그런데 막상 서른 중반이 넘어가고 주변에서 하나둘씩 짝을 찾아 떠나는 걸 보니까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소개팅도 한두 번이지, 주말마다 시간 내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커피 마시는 것도 이제는 좀 기운이 빠지는 일이다. 그래서 일단 한 번 가보자, 라는 생각으로 강남역 근처에 있는 이름 좀 들어본 대형 업체에 상담 예약을 넣었다. 솔직히 말하면 좀 궁금했다. 도대체 내 조건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치로 매겨지는지, 그리고 정말 시스템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체계적으로 돌아가는지 말이다.

대기실에서 마주한 묘한 긴장감

막상 도착해서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기분이 영 묘했다. 나 말고도 꽤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다들 잡지를 보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아주 정적이어서 무슨 병원 대기실에 온 것 같기도 했다. 안내 데스크에 앉아 계신 분들은 생각보다 훨씬 바빠 보였다.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 간단한 서류를 작성했는데, 학력, 직업, 연봉, 심지어 부모님 직업까지 적으려니 기분이 묘하게 씁쓸했다. 내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왜 이렇게까지 적어야 하나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 정보들이 있어야 상대방과 매칭이 된다니 어쩔 수 없지 싶기도 하고.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상담 매니저님이 나를 불렀다. 상담실은 꽤 아늑했지만,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격표 없는 상담의 불안함

매니저님은 아주 친절했다. 그런데 상담이 진행될수록 뭔가 핀트가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나 성격 같은 건 뒷전이고, 계속해서 자산 규모와 사회적 위치에 대해서만 물어보더라. 그러다가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가격 문제였다. 상담 중에 대놓고 얼마냐고 물어봤는데, 명확한 정가를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당장 가입하면 무슨 프로모션 적용이 되고, 몇 회를 보장해주고, 등급이 어떻게 나뉘는지… 이게 마치 시장에서 흥정하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200만 원이고 누군가에게는 500만 원이 될 수도 있다는 그 모호함이 너무 불편했다. 어떤 곳은 가입비가 수천만 원대라는 소리도 들었는데, 과연 그 돈을 내고서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 맴돌았다. 업체마다 가격이 다 다른 것도 문제지만, 홈페이지 어디를 뒤져도 정확한 비용 체계를 찾기 어렵다는 게 참 이상했다.

정보 유출에 대한 은근한 걱정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적어낸 그 상세한 개인정보들이 과연 안전하게 관리될까? 사실 뉴스에서 결혼정보회사 데이터 유출 사건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단순한 이름이나 번호가 아니라 혼인 이력부터 재산 규모, 학력까지 그야말로 개인의 치부가 다 들어있는 데이터인데 말이다. 내가 오늘 쓴 그 종이들이 나중에 어디서 어떻게 돌아다닐지 생각하니 조금 등골이 서늘했다. 요즘은 뭐 하나 가입하려고 해도 개인정보 동의서가 수십 페이지인데, 정작 중요한 내 인생 기록이 담긴 이 정보들을 어디까지 믿고 맡겨야 하는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계약서 문구들도 꼼꼼히 읽어보려니 눈이 침침해지고, 결국은 매니저님 말솜씨에 의존하게 되는 것 같다.

고민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결국 그날은 아무런 계약도 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상담을 받고 나니까 결혼이 무슨 비즈니스 계약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낭만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마냥 기다리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고. 요즘은 혼인신고를 앞두고 주택 청약이나 연말정산 문제 때문에 머리 싸매는 친구들도 많은데, 결혼이라는 게 단순히 사람을 만나는 걸 넘어서 경제 공동체로서의 시작이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상담실을 나서서 강남역 인근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 한 잔 마시는데, 가격이 6,500원이라 써진 걸 보고 괜히 쓴웃음이 났다. 저렇게 가격이라도 명확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도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번 주말에는 그냥 집에 가서 예전에 보던 책이나 좀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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