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인가, 갑자기 마음이 붕 떴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 소식을 전해오니까 이게 나만 뒤처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괜히 마음이 급해졌던 것 같다. 평소라면 사주팔자나 보러 다녔을 나인데, 이번에는 조금 더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덜컥 결혼정보회사라는 곳에 상담 예약을 넣었다. 예전에는 이런 서비스가 왠지 좀 폐쇄적이고 무거운 느낌이었는데, 막상 상담 예약 버튼을 누르는 건 생각보다 쉽더라.
상담실의 분위기와 첫 마디
강남역 11번 출구 근처에 있는 큰 빌딩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향수 냄새가 훅 끼쳐왔다. 대리석 바닥이 반짝거리고, 상담해주시는 분은 너무나 정갈하게 머리를 묶고 앉아 계셨다. 내가 앉자마자 차를 한 잔 내어주셨는데, 그게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괜히 더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가입비는 대략 수백만 원 단위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한 번에 덜컥 낼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이게 대체 뭘 위한 비용인가’ 싶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나를 계속 압박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힐링 가득한 장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넷플릭스 드라마 속 환상과 현실의 차이
요즘 넷플릭스에서 ‘조립식 가족’ 같은 드라마를 틈틈이 보고 있다. 주인공들이 얽히고설키며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나도 저런 운명적인 만남을 조금은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의 결혼정보회사는 훨씬 더 건조했다. 드라마 속의 신민아나 황인엽처럼 설레는 서사가 아니라, 나의 직업, 연봉, 학벌이 적힌 종이 한 장이 전부였다. 상담사는 ‘현실적인 조건’을 자꾸 강조했다. 사랑이라는 단어보다는 매칭률, 성혼율 같은 용어들이 오갔다. 마치 대입 상담을 받는 기분이라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헛헛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묘한 기분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해가 져 있었다. 강남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왔는데, 문득 내가 왜 여기에 앉아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분 정도 상담을 받았을 뿐인데 기운이 다 빠져서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 커피를 하나 사 들고 버스 정류장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상담사분께 ‘혹시 제 사주에 결혼운이 언제 들어오는지 아세요?’라고 물어봤더니, 그분은 웃으면서 ‘여기는 사주 보는 곳이 아니에요’라고 딱 잘라 말하셨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섭섭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
집에 와서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방금 전까지 했던 상담 내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백만 원을 주고 시스템 속에 나를 던져 넣는 게 과연 답일까.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우연히 만나는 게 나을까. 영주시에서 운영한다는 ‘법률홈닥터’ 같은 서비스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데, 마음의 외로움은 어디서 무료로 상담해주려나 싶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지면 되는 건데, 그게 제일 어렵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출근 준비를 했다. 결제는 하지 않았다. 그냥, 아직은 누군가에게 내 점수를 매겨달라고 하기에 내 마음이 덜 준비된 것 같아서. 어쩌면 이대로 그냥 지내다가, 나중에 친구들 결혼식장에나 가서 맛있는 밥이나 먹고 오는 게 지금의 나한테는 제일 마음 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